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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를 돌려주세요.

손석만 2021. 3. 12. 18:03

  비행기를 돌려주세요. /손나래

 

  레스토랑 문을 열자 귀에 익은 음악이 들린다. 손님들이 한바탕 훑고 간 분위기며 바닥에는 휴지가 떨어져 있다. 점심시간이 지나서인지 손님은 별로 없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첼로의 저음 선율이 다리에 감기는 듯하다.

  그들은 테이블에 마주보고 앉는다. 테이블 위에는 휴지가 옥타브 계단처럼 쌓여 있다. 그녀는 티슈 몇 장을 뽑아 얼굴에 땀을 닦는다.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린 휴지가 주문받고 가는 종업원 구두에 시그널 뮤직처럼 따라 붙는다.

 

  “이집 음식이 괜찮네요!”

  그녀는 스테이크 한 조각을 천천히 씹으면서 처음으로 말을 한다. 만난 지 두어 시간이 지났지만, 처음으로 그녀의 음성을 듣는다. 20대에 카랑카랑하던 목소리가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답게 무게감이 느껴진다. 그들은 우연히 처음 만났을 때에는 너무 놀랐다. 한참을 장승처럼 서로 바라만 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멍청하게 서로 바라만 보고 있을 때 그가 겨우 한 말은

  “저어 시간이 있으면 잠시만......” 하고 얼버무리자

  그녀는 “고개만 끄덕”이었다.

  그리고 특별한 목적도 없는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말이 없다. 할 말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너무 할 말이 많았기 때문에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서두가 떠오르지 않았다. 20여 년 전 서로가 말 한마디 못하고 헤어지는 순간부터 그들은 할 말을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그들은 그렇게 무거운 발걸음으로 두어 시간을 걷다보니 배가 고팠다.

 

                                                          *

  고추잠자리는 빨갛게 약이 올랐다. 억새풀꽃은 여름 내내 속으로만 삭히던 속내를 밀어 올려 가을의 가슴을 하늘하늘 더듬었다. 햇살도 잘 익은 능금 살처럼 탱탱했다. 높은 구름이 듬성듬성 무리를 지어 푸른 하늘을 뜯어 먹고 있었다.

  그날도 그는 배가 고팠다. 그녀의 집에 놀러 갔었다. 16살 무렵이었다. 집은 개울을 앞에 두고,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있었다. 동네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 외딴집이라 불렀다. 아버지가 술을 너무 좋아하여 사람들은 술도가라고도 하였다. 광에는 항상 술독에서 술 익는 냄새가 났다. 그 보다 세 살 위인 그녀를 누나라고 부르며 동네에서 가장 친하게 지냈다. 평소에도 가끔 놀러가서 삶은 고구마를 얻어먹곤 하였다. 그날은 삶은 고구마가 없었다. 그녀는 배고파하는 그에게 사카린을 탄 술지게미를 한 양푼 주었다. 허급지급 먹어댔다. 맛있게 먹는 그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흐뭇한 생각이 들었다. 금세 다 먹어치운 그에게 한 양푼 더 주었다. 건네주는 누나의 손가락이 그날따라 두툼한 것이 복스러웠고, 손가락뿐만 아니라 팔도 두툼한 것이 믿음직스럽게 보였다. 생머리를 한 얼굴에 주근깨가 적당하게 뿌려져 있었다. 쌍꺼풀을 가진 눈으로 미소를 지으면 입은 목화송이처럼 부풀었다. 키도 그가 위로 올려다 보아야할 만큼 컸다. 가슴은 그녀의 몸에서 가장 발달한 것처럼 두툼하게 보였다.

  그는 술지개미를 처음 먹어 보는 것이었다. 혀끝에서 느끼는 맛은 텁텁한 맛과 달콤한 두 가지 맛이었다. 배가 고팠기 때문에 달콤한 맛으로 자꾸 먹었다. 그러나 배가 불러올 즈음 그의 얼굴은 빨개지기 시작하였다. 그날따라 빨개진 얼굴이 더욱 예쁘게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에 초등학교 담임선생이 반에서 가장 예쁘다고 칭찬을 자주했다. 또래들보다 덩치가 작은 그를 보는 사람마다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엄마라면 누구나 그에게 젖꼭지를 물리고 싶을 정도로 이목구비는 어느 하나도 빠지는 데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내성적이며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다. 특히 또래의 예쁜 여자아이 앞에서는 더욱 더 그랬다.

  그는 숨을 헐떡이기 시작하였다.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구름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땅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가슴이 답답하였다. 이제는 숨조차 쉬기가 힘들었다. 늦가을 쌀쌀한 날씨였다. 얼굴과 손발은 빨갛게 달아오르면서 추위(술 한기)가 느껴졌다. 괴로워서 집에 가려고 일어서 보지만 걸음이 되지 않았다. 몇 걸음 걷다가 마당에 타작을 마친 콩깍지 위에 쓰려졌다. 신음을 토하며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그때까지 바라만 보고 있던 그녀는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재미있는 눈으로 바라보았었다. 그녀는 술지게미를 먹어도 약간의 술기운을 느낄 뿐 취하는 일은 없었다. 그녀는 겁이 덜컥 났다. 저렇게 하다가 죽는 게 아닌가 싶어 불안해하였다.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다가가서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잘 되지 않았다. 몸은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렸다.

  우선 떨고 있는 그를 따듯하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랑방으로 들이려고 하였다. 쉽게 일으킬 수가 없었다. 억지로 잡아 끌다보니 옷이 벗겨져 속살이 들어났다. 하는 수없이 치마폭으로 싸서 사랑방으로 옮겼다. 그의 체온이 차갑게 느껴졌다. 방에도 추웠다. 이불을 덮어 주었지만 추위는 가시지 않은 듯 계속 신음하며 떨었다. 하는 수없이 그녀는 그를 꼭 안아 체온을 나누었다.

 

                                                           *

  똑똑, 똑똑똑?

  노크 소리에 그는 멍하니 눈을 뜬다. 천정에는 하트 모양 형광등이 있다. 창문의 분홍커튼이 하얀 벽지에 애무하듯 살짝살짝 스치고 조그만 탁자 위에는 물 컵이 두 개가 있다. 화장대 위에는 화장을 지운 휴지가 보인다. 침대가 낯설다. 옆에는 주인 없는 베개가 하나 더 있다.

  똑똑똑, 똑똑똑?

  다시 노크 소리가 난다. 그는 머리를 흔들어 본다. 머릿속이 텅 빈 느낌이다. 왜 자신이 낯선 방에 있는지 모른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 머뭇대며 방문을 연다. 문 앞에는 60대의 아줌마가 있다. 그녀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방 베워줄 시갠이 핸참 지냈서도 도통 나갈 생각을 안 해써 씰려를 했다아이요.”

  그는 여전히 꿈을 깨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더 말한다.

  “우리도 장사를 해아 멕고 살게 아이닙꺼?”

  “아니 장사라니요, 나에게 무슨 장사를 했단 말입니까?”

  “아아니 이 냥반이 몰래도 한참 모르네, 여갠 쑥박 시갠은 대음날 정오까지 아인고, 찌끔 핸 씨가 지내도 도통 갈 생객을 안 하니 웬!”

  그 소리에 배가 고파졌다. 여기가 어딘지를 깨달았다. 겸연쩍어 하면서 조용히 그녀에게 묻는다. 그는 왜 여기에 있고 어떻게 들어 왔는지? 그녀는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말했다.

  “쑤리 꼬주망태가 돼가꼬 억쑤로 쩖은 애가씨한테 앱피다시피 들려오데이만”

  쩝쩝 입맛을 다신다. 속이 쓰리다.

  “저는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납니다!”

  아줌마는 약간 목청을 높인다.

  “에이구 하룻뱀새 쩖은 애가씨한테 혼을 쪽옥 뺐게 좋오겠다.”

 

  그는 황급히 여관을 빠져나온다. 배가 고프고 속이 쓰리다. 술을 좋아하는 친구들의 술 먹은 다음 날 해장에는 복국이 좋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걸어가다가‘참 복국’이라는 간판이 보여 들어간다. 식당 안은 시끄럽다. 주인은 인사를 하면서 몇 사람이냐고 묻는다. 혼자라고 하자 “어서 오세요 하였던” 인사를 리콜이라도 하듯이 안쪽 구석진 자리를 가리킨다. 한참 뒤 종업원이 주문 받으러 와서 또 혼자냐고 묻는다.‘이거 원 더러워서 ’혼잣말로 한다. 쓰린 속이 더 쓰리다.

  그는 지금까지 딱 한 번(술지게미) 취했던 기억이 있다. 기억이 아니라 평생을 잊지 못할 트라우마였다. 20여 년 전 일이다. 그 때문에 30대 후반까지 술을 배우지 않았다. 술이라면 냄새만 맡아도 취할 것 같았다. 친구들이 술 한 잔 못하는 것이 남자냐고 아무리 비아냥거려도 절대로 배우지 않았다. 술 먹고 필름이 끊긴다는 말도 가끔 들었지만,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알 것 같다.

  그때 사랑방에서는 취했었지만, 기억이 살아있다. 알몸이었다. 취해서 떨고 있었다. 처음에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다음에는 체온보다 더한 그녀의 정열이 덮쳐오고 있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이 발기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되는 것 같기도 하였다. 커다란 덩치가 위에서 누르고, 얼굴에는 엄마 젖 같은 것이 오르락내리락하였다. 꼭지 같은 것이 입에 물리기도 하다가 콧등에 마찰 될 때에는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또한 하늘의 별을 더듬는 기분이기도 했다. 그녀는 그의 몸을 더욱 더 감아 조이고 있었다. 그는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생각과 몸이 따로 국밥이었다.

  종업원이 복국을 탁자 위에 ‘턱’ 놓는다. 펄펄 끓지만 김은 보이지 않는다. 식당 안을 둘러보니 그 많던 사람들이 거의 다 나가고 얼마 안 남았다. 숟가락을 끓고 있는 국에 소독하듯 넣었다가 한 숟가락을 떠서 쓰라린 속을 달랜다. 국을 두어 숟갈 뜨다말고, 그날 처음 만져 본 것을 떠올리며 손끝을 비볐다. 여자 아랫도리를 처음 만져 본 기억이다. 결혼을 하고 난 후로는 잘 알게 되었다. 그는, 그것이 인간이 생기는 시초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인간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누가 만들었을까? 닭을 생각해 본다. 달걀이 먼저 생기고 닭이 생겼는지 닭이 먼저 생겨서 알을 낳았는지? 생각은 한 군데서 뱅글뱅글 돌기만 한다.

  하지만 그는, 그 액체가 지구의 온 산맥을 더듬어 흘러내린 짠 바닷물같이, 인간의 몸 구석구석 더듬고 나온 짠물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 맛을 확인하려는 것처럼 손가락을 입에 대고 맛을 본다. 어쨌든 혓바닥에 짠맛이 느껴진다.

  그는 다시 국그릇 속의 콩나물을 한입 거두어 넣고 씹는다. 복 수육은 손도 대지 않고 밥 한 숟가락 먹고 국물만 홀짝홀짝 마신다. 따뜻한 국물이 온몸을 더듬어 퍼지면서 몸 밖으로 빠져나온 빈 공간을 구석구석 다시 채우는 느낌이다.

  그는 쓰린 속을 어느 정도 달래고 계산하려는데 카운터에 주인이 보이지 않는다. 식당 안을 둘러보니 손님은 자기밖에 없었다. 주인과 종업원은 한쪽 구석에서 식사 중이다. 가격을 묻고 지폐 한 장을 계산대 위에 놓았다. 거스름돈도 받지 않고 밖을 나온다.

 

                                                            *

  그는, 어릴 때부터 모든 음악을 좋아했다. 특히 클래식음악에서는 고전주의 보다 낭만주의 음악을 선호했다. 성격은 말이 없고 내성적이지만, 음악 세계서는 어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웠다.

  그는 음악공연에 늘 혼자 다녔다. 주위에는 같이 갈수 있는 친구가 없었다. 항상 마음이 외로웠다. 몸은 일상생활에 적응해 있지만, 영혼은 사막을 헤매는 방랑자 같았다. 음악 공연 같은데 갈수 있는 친구를 항상 마음속에 두고 있었다. 어쩌다 결혼한 그의 부인은 그와 성격도 맞지 않고, 음악공연 같은데 같이 올수 있는 대화 상대가 아니었다.

  어느 날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시립 교향단의 공연이 있었다. 그날도 혼자 공연장을 찾았다. 공연장 입구에서 행사 진행 요원들이 안내를 하고 있었다. 그 중에 악단 단무(총무)를 맡고 있는 사람이 그에게 와서는‘오늘도 혼자 오느냐’고 인사를 한다. 그 사람은 평소에 잘 아는 고향 후배다. 올 때마다 혼자라는 질문이 질리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외롭기도 했다.

  그의 후배는, 그 악단 소속 첼리스트를 그에게 소개해 주었다. 그 보다 10살 아래인 그녀의 성격은 그와 반대로 외향적이었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하였으나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통했다. 음악이라는 공통언어 안에서, 서로 코드가 맞았다. 그녀도 타향에서 친구도 없는 처지고, 아는 사람이라고는 몇 없는 환경에서 빨리 친해졌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공연이 있는 날은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가서 연주하는 것을 보았다. 언제나 맨 앞자리에 앉았다. 지휘자의 지휘봉에 따라 흔들리는 그녀의 몸짓도 감상하였다. 활을 잡고 움직이는 가느다란 손가락도 예뻐 보였다. 첼로의 머리는 그녀의 머리보다 약간 위에 있다. 리듬에 따라 고개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러다 객석의 그와 눈길이 마주치면 미소를 지었다. 연주하는 그녀의 모습이 천상의 새 같았다.

  그는 음악을 들으며 상상으로 환상적인 여행을 떠나곤 했다. 오늘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 공연이었다. 자연을 묘사한 음악 중에서 오케스트라의 특성을 최대한 살린 것으로 잘 알려진 곡이다. 평소보다 많은 단원과 악기가 무대에 나왔다. 시작 전에 악기들의 음역 조율하는 소리로 시끄럽다. 객석도 여느 때보다 많은 사람이 꽉 채우고 있다.

  지휘자가 나와 인사를 한다. 박수가 쏟아진다. 객석의 조명이 꺼진다. 지휘자의 지휘봉이 어둠에 묻혀 있다. 그는 눈을 감는다..... 어두운 ‘밤’을 지나 ‘일출’에서는 눈 덮인 알프스의 여명이 열린다. 웅장하게 솟아오르는 해를 본다.....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하다.

  갑자기 벼락이 내리치듯 음이 커진다.‘천둥번개와 폭풍’이 몰아친다. 회오리바람이 관중석을 훑고 지나간다. 여운이 남는다.

 

  "오늘 공연은 아주 좋았어!"

  연주를 마치자 커피숍에서 그녀와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한다. 그의 말에, 이 곡을 연주할 때는 많이 신경 쓰인다고 대답한다. 자연을 묘사한 음악 중에서 베토벤 <전원 교향곡>과 함께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알프스 교향곡>만의 특성을 살리려고 긴장 했다고 한다. 다양한 악기, 연주자가 필요해서 독일 라디오방송 교향악단과 협연이 아니었더라면 시향의 단독으로는 공연할 수 없었을 거라고 말한다. 또한, 이 곡을 작곡한 R, 슈트라우스는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의 스승이기도 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는 안익태 선생의 말이 나오자, 핀란드의 작곡가 시벨리우스를 떠올린다.

  핀란드가 제정 러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 독립을 위한 국민감정을 일깨우려고 시벨리우스는 <핀란디아>를 작곡했다.

  안익태 선생님이 <환국 환상곡>을 작곡한 것도 그랬다. 우리나라가 일제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 유럽에서, 한국의 혼을 깨우기 위해 이 곡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고조선 건국신화로부터 일제의 해방까지, 민족 고난과 영광의 서사가 머리를 스쳐간다.‘환희’부분에서 고개가 흔들면서 마음속으로 애국가를 연상한다.

  그녀는 리허설 이야기를 한다.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악보는 국제 공용어나 마찬가지여서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호흡이 잘 맞았다고 한다. 그리고 <알프스 교향곡>리허설과 관련된 일화를 덧붙인다. 슈트라우스는 이 곡을 리허설 하다가, 천둥이 치는 부분에서 악장이 바이올린 활을 바닥에 떨어뜨리자, 순간 연주를 멈추게 하고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고 한다.“여러분 잠깐 쉬어야겠소. 지금 비가 막 내리기 시작했는데 악장이 그만 우산을 떨어뜨렸으니 말이오.”슈트라

우스는 유머와 재치로 부드러운 연습 분위기를 만들어 나갔다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답답했던 마음을 그녀를 만나면서 활기를 찾았다. 진주에서 열리는 남강유등축제에 이어 이상근 국제음악제에도 같이 다니면서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들은 1달에 한 번씩 하는 음악 동우회 연주도 같이 다녔다. 일정한 장소를 정해놓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장소는 달랐다. 정원이 있는 회원의 집에 가서 하기도 하고, 좋은 야외 장소가 있으면 거기 가서 하기도 하였다. 또한 회원 집안의 기념행사가 있으면 축하공연도 다녔다.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어느 화창한 봄날 주말에 둘이는 약속대로 지리산 중산리로 갔다. 주차장에서 법계사를 거쳐 천왕봉으로 가는 등산로에 들어서고 보니, 진달래가 붉게 피어있다. 산이 봄이 불타는 듯하다. 앞뒤로 손을 잡고 걸어간다. 계곡 물소리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교향시처럼 들린다. 악기들이 흉내를 내는 것보다 생생하다.

  바람에 꽃송이가 흔들리고 있다. 그녀는 꽃송이에 하루만 세 들고 싶다는 농담을 한다. 그도, 그녀와 같은 꽃송이에 세 들고 싶다고 한다. 그들은 같은 송이에는 되니 안 되니 옥신각신 한다. 그 사이에 벌이 먼저 들어가 버린다. 나비도 덩달아 들어간다. 하늘을 보니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 있다. 산 벚꽃나무도 환하게 피어있다.

  법계사 조금 못 미처 로터리산장에서 점심을 먹는다. 먹고 난 뒤 쉬면서 피로를 달랜다. 그런 다음 법계사 경내로 들어간다. 돌무더기 탑들이 있다. 그는, 돌탑 맨 위에 돌 하나를 포개면서 "우리 사이도 이렇게 탑을 완성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독백처럼 말한다. 그녀는, 소리를 듣고 한참 생각하다가 꼭대기에 돌을 하나 더 얹으면서 "무너질 때 무너지더라도......"

  단청이 낡은 아담한 법당이다. 경내를 둘러보고 산을 내려온다. 길옆에는 철쭉꽃망울이 뭉글뭉글 맺혀 있다. 그들은 철쭉이 피면 다시 오자고 약속을 한다.

 

                                                            *

  객석은 꽉 차있다. 지휘자가 나와 인사를 한다. 지휘자는 지휘봉을 치켜들고 단원들의 자세를 훑어보다가 손을 전후좌우로 움직였다. 공연은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으로 시작했다. 서주의 멜로디가 가슴을 쓸어내린다. 뒤따라오는 트럼펫 소리가 불안하게 울린다. 쿵쿵 드럼 소리가 가슴을 친다. 이어 지휘자는 지휘봉을 빗발치듯 흔든다. 평소에는 힘이 있고 경쾌하게 느껴졌는데, 오늘은 분위기가 불안하다. 피날레에 이르자 지휘자의 머리가 벼락 맞은 듯 흔들린다. 곡이 끝나자 관중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낸다.

  이어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연주된다. 물방울이 굴러다니다가 톡톡 터져버리는 느낌이다. 터진 물방울들이 마음을 적시는 것 같다.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이 생각난다. 폐병에 걸려 가을비를 맞으며 쓸쓸하게 걸어가는 쇼팽의 뒷모습을 떠올린다.

  리듬은, 고양이가 목에 방울을 달고 도망을 다니는 듯하다. 방울이 무대 바닥에 떨어진다. 떨어진 방울이 객석으로 굴러온다. 관중들은 방울을 주워서 귓속에 담는다.

 

  공연의 열기를 품었던 예술회관이 남강 표면에 비치고 있다. 바로크 건물 양식의 중후한 멋을 지닌 경남문화예술회관이다. 바로 앞 남강 둔치에 야외극장이 있다. 고대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극장을 연상될 만큼 유사하다. 반원형인 아테네의 극장 앞에는 큰 건축물이 있는 반면에, 남강 둔치의 야외극장 앞에는 진주팔경의 하나요, 논개의 혼이 머물고 있는 깎아 자른 뒤벼리라는 절벽이 버티고 있다. 다만 다른 점은 객석과 건물사이에 강물이 흐른다는 것이다. 텅 빈 객석들이 석양에 여울지는 남강의 물결을 바라보고 있다. 주위에는 조각 공원이 있다.

  공연을 마친 그녀가 첼로케이스를 짊어지고 나온다. 악기가 그녀의 머리보다 약간 위에 있다. 그들은 야외 조각공원을 산책한다. 조각공원에는 이형기 시인의 시비가 있다. 그녀는 앞에 서서 시를 천천히 읽는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을 이룩하는 축복에 쌓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시를 읽고 골똘히 생각에 잠기었다가, 그녀는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이 그의 손을 잡는다. 조각공원을 돌아서 대숲 산책로를 들어간다. 대나무가 우거진 숲에는 오솔길이 강변을 따라 나 있다. 남쪽으로 1킬로 가량 떨어진 이형기 시인의 모교까지 이어진다. 손을 잡고 대나무 숲길을 걸어간다. 오늘따라 그녀의 손이 차갑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는 손을 영원히 놓지 않고 싶다.

  숲 속을 거의 다 나올 무렵, 그녀가 오늘은 술 한 잔하고 싶다고 한다. 지금까지 만나는 동안에 찻집에만 갔었지 같이 술을 마셔본 적은 없다. 그녀는 술을 가끔 먹지만, 그가 전혀 술을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전 도로 옆에는 저녁이 되자 일렬로 포장마차들이 전을 벌였다. 포장마차 안에는 오뎅국이 끓고 있다. 이웃포장마차에서는 벌써 취객의 음성이 들린다. 안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다. 파를 썰던 아줌마는 반갑게 인사를 한다. 오뎅국 냄새가 포장마차 안을 꽉 채우고 있다. 그녀는 자주 먹어본 사람답게 안주와 소주 한 병을 주문한다. 음료수도 한 병 추가한다. 각자 음료수와 소주를 마시고 이형기 시인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

  그는 진주 토박이답게 조금 전에 지나오다 본 학교가 시인의 모교이라고 지금은 과학기술대학이지만, 시인이 다닐 때에는 농업전문학교였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여기서 10분 거리도 안 되는 곳에 시인이 살던 집이 있다고도 했다. 역전 쪽에서 가다가 남강 다리를 건너지 않고 바로 왼쪽 대숲 앞에 시인의 집이 있었다. 강 건너 북쪽에는 촉석루가 있고 시인이 살던 집은 도시개발로 옛 모습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는 진주 사람이면 다 알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이야기를 듣고만 있다. 그가 말을 중단하자 잠시 침묵이 감돈다. 옆 포장마차에서 취객들의 떠드는 소리가 다시 들린다.

  그녀는 <낙화>를 한참 중얼거리다가

  “우리, 헤어져. 그리고 나 내일 독일 가.”

  그는 무슨 말인지 몰라 한참 멍했다. 갑자기 하늘에서 벽이 눈앞에 턱 떨어진 기분이다. 아니 길가다가 마른하늘에서 코드가 없는 밥솥이 떨어져 머리에 맞은 기분이다. 심장이 밥솥 안에서 타는 기분이다. 

  그녀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는 아무런 준비도 없다. 무방비에서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만난 지 3년이 되었지만, 헤어진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대부분 남녀 사이란 육체관계가 동반되지만,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 마음의 친구였고 정신적인 동반자였다. 음악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같이 웃고 같이 놀아왔다. 그녀를 보내는 건 자신의 인생에서 반이 떨어져 나가는, 아니 어쩌면 육체를 빼고 영혼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나기 전 그의 인생은 외로웠다. 진정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취기가 오른 듯 그녀의 말에는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다. 대구가 고향이지만 그녀는 평소에는 사투리를 잘 쓰지 않는다. 진주 토박이 말 ‘에나가’(정말로)만 빼놓고는 같은 경상도 사투리여서 잘 통한다.

  그들은 사투리로 한참 말을 주고받는다.

  그러다 그는 생각한다. 그녀를 만나기 전에는 예술회관에서 공연을 감상하고 늘 혼자서 대숲을 거닐었다. 오늘은 둘이서 손잡고 공연 이야기도 하며 걸어왔다. 그런데 그녀가 내일이면 독일로 간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아니 생각지도 못했다. 그는 아줌마에게 소주 두 병을 시킨다. 음료수를 마시던 잔을 채워 물마시듯이 들이켰다. 소주 두 병을 채 다 마시기도 전에 쓰려졌다

 

                                                         *

  레스토랑을 나와 커피숍으로 들어간다. 진주의료원 앞 ‘브람스’라는 곳에는 그들의 추억이 있다. 어쩌다 한 번씩 삼천포 노산공원에 있는 클래식 음악다방도 갔었지만, 진주에서 만날 때는 대부분 이곳이었다. 20여 년 만에 만나는 곳의 분위기는 옛날 모습 그대로다. 음악도 그때와 달라진 게 없다. 다만 LP 음반에서 CD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리고 앞에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도 예쁜 것은 그대로이지만, 많이 늙은 것 같다.

  그녀가 지금까지 혼자라는 말에 놀란다. 그는 죄를 지은 것처럼 미안해서 할 말을 잃는다.

  마침 CD에서 황홀함과 로맨틱한 애수가 담겨있는 브람스 교향곡 4번 2악장이 흘러나온다. 그는 음악에 젖어들면서 브람스의 사랑이 떠올린다. 14세 살 연상의 여인 클라라에 대한 사랑이다.

  클라라는 9살 연상인 슈만과 사랑을 했다. 나이 차이로 반대하자 부모에게 법적 소송까지 하여 결혼했었다.

  아이도 여럿 있었다. 브람스는 그런 여인을 평생 마음속에 담아두고 혼자 살았다. 편지만 서로 주고받으면서,

 

  마지막 그날 새벽에 그녀는 여관을 나왔다. 자취방에 미리 챙겨둔 짐을 들고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를 탔다. 김포공항에서 독일로 가는 비행기는 오후 5시 출발로 예정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의심 없이 그를 만났다. 나중에 유부남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우연히 그의 부인과 마주치치 않았더라면 헤어질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순간 당황해 하는 그의 얼굴을 민망해 볼 수가 없었다. 우람한 체격의 부인 얼굴에서도 핏기가 사라지는 듯했다.

  그는 3살 연상인 그녀와 결혼한 것은 그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때 사랑방에 둘이 알몸으로 있다가 그녀의 부모에게 발각되었다. 이후 20살 나이에 결혼했다. 아이도 낳았지만,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결혼 생활을 지속할수록 독하게 술도 먹지 않았던 것이다. 술지게미 한 번 잘못 먹고 걸려들어 족쇄를 찬 기분으로, 그러나 그녀와 마지막 날은 술을 독하게 먹었다.

  그녀는 그와 만나선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은 그의 부인을 보고, 진짜 유부남이라는 인식이 되었다. 부인을 직접 보기 전에는 유부남이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냥 뭐 친구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부인의 얼굴을 보고서는 마음속에 죄 같은 것이 쌓이기 시작했다. 더 깊이 빠지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서 그녀는 부모님을 재촉하여 미루어 왔던 유학을 결심했다.

 

                                                         *

  독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녀는 울고 있다. 막상 비행기가 이륙하여 한국 땅을 벗어나니 눈물이 난다. 불안해지면서 자꾸 눈물이 난다. 그동안 내 안에 이렇게 많은 눈물이 마음에 고여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눈물이 끝이 없다.

  굳게 마음먹은 탓인지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에는 눈물이 나지 않았었다.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것으로도 위안이 되었든지, 같은 땅 위에 있는 것으로 안심되었든지, 그러나 이제 그가 없는 낯선 땅으로 간다.

  옆 좌석에는 마음씨가 좋은지 모를 중년 아줌마가 타고 있다. 슬픈 감정이 전염되었는지 그녀가 자꾸 우는 바람에 아줌마도 따라 운다. 아줌마가 우니 더 눈물이 난다.

  계속 울고 있는 것을 본 승무원도 눈시울을 적신다. 승무원이 다가와 뭐 도와 줄 것이 없느냐고 묻는다.

  그녀는 얼른 대답한다.

  “비행기를 돌려주세요.”

            -끝-